왜 시골로 왔냐고 물으면 그때 그때 대답이 달랐다.

초간단 답은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귀농이 제일 쉬웠어요.' '도시 생활이 너무 피곤해서.'복합적 답은 '종합선물세트라 생각했다.'

 

몇 년전 귀농통문에 '강대골 봄비네 귀농기'를 쓴 적이 있고 이십여년 전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잠깐 일할 때 '좋은 할머니가 되기 위하여'란 약간은 비유적인 귀농사유서를 쓴 적은 있지만 왜 귀농을 '종합선물세트'라 생각했는 지 구구절절 풀어 본 적은 없다. 이제 한번 풀어 볼 때가 된 듯 하다.

 

귀농을 결심한 지는 이십년째이고 귀농한 지는 십 팔년이 되어가니 지금 여기 살아서 좋은 일을 늘어 놓으면 되겠다. 이 모든 것을 예상했느냐 묻는다면 '95% 그렇다'고 하겠다. 5%는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인데 부모님과 함께 사는 즐거움이다. 언니네도 가까이 귀농해 살고 있고 시부모님도 가까이 살고 계시니 늘 든든하고 모이면 흥겹다.

 

먹을 것을 심어 먹으니 내가 어쩌지 못하는 사유들 때문에 생존의 불안을 겪을 필요가 없다. 먹고 살기 위해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싫은 상황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 IMF같은 상황이 와도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나는 돈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어 굶어 본 적이 없는데도 기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포괄적으로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텐데... 그래서 봄에 일년 먹을 감자를 수확하고 나면 안심이 된다.^^ 이제 뭔 일이 있어도 굶어 죽진 않겠구나. 옥수수, 고구마, 콩 등이 차례로 나면 더 자신감이 생기고 가을에 무, 배추까지 합세하면 든든~하다.

 

유기농으로 작물을 재배하니 건강에도 좋고 땅도 살릴 수 있다. 또한 땅이 살아나니 주변의 생태계가 더 풍요로와진다. 도시보다 공기도 좋고 스트레스 상황도 덜하니 병원 갈 일도 덜하다. 물론 지네나 뱀 등..이 무서운 것도 있지만 어떤 스트레스를 선택할 것인가는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좀 덜 씻어도 마음이 편안하니 부지런하지 못한 천성에 맞고 새 옷 사기보다 헌 옷을 사거나 얻어 입는 것이 편하니 화장품을 사거나 새 옷을 살 돈을 버는 데 들어가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나중에 집과 먹을 것에 대해 흡족하게 자급하게 되면 바느질 해서 옷도 만들 수 있겠지. 먹고 자고 입는 것을 간접이 아닌 직접으로 해결하면 묘한... 지극한 즐거움을 얻게 되는 걸 발견했는데 옷 까지 만들어 입으면 거의 완벽할 것이다.

 

맘만 먹으면 주변의 재료를 이용해 집을 지을 수 있다. 물론 나는 이십년 동안 지을까 말까 했던 집을 몇 개월 만에 어떤 사정 때문에 뚝딱 짓게 되고 (물론 지금도 이년째 짓고 있긴 하다^^) 또 그닥 생태적인 구조가 아니라 아쉽기도 하지만 시간을 재촉 받지 않는다면 집짓기 자체가 놀이이며 자기실현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집 짓는 걸 보고 함께 하며 배운다.

 

휴대폰이나 티비시청에 대한 실랑이가 조금씩 있지만 아이키우기 좋다. 불량식품으로부터 완벽하진 않지만 거리를 둘 수 있고 시골 작은 학교에 다니며 친구 귀한 걸 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사랑하고 경이롭게 여기며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다. 어렸을 때 온 산과 들과 바다를 동네 언니 오빠들 친구들과 탐험하며 놀았던 행복감을 내 아이들도 맛 본다. 물론 함께 탐험할 사람은 제한적이지만...

 

아마 어린시절을 바닷가 시골에서 보낸 경험이 나를 시골로 이끈 힘의 칠할은 될 것이다. 대학 다닐 때 농활갔을 때가 제일 즐거웠다. 나는 그것이 서울에서 허여멀건한 사람들만 보다가 햇빛에 그을리고 소탈한 사람같은 사람들을 만나서라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마 시골에 대한 태생적 그리움이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해도 농부가 될 생각은 못 했는데 답을 주었던 책이 두 권 있다. 두 권 다 변산공동체를 꾸리신 윤구병 선생님의 책인데 「자그마한 내 꿈 하나」와 「실험학교 이야기」. 이 책들을 읽고 귀농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여겨졌고 귀농을 결심한 이후 행복해졌다. 그리고 이 행복은 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어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이 되었다. 사실 여기엔 수정이 필요한데... 내 자신의 업이 포함된 공업으로 인한 세상의 비극들... 원전사고나 세월호 사건 등으로 나만 골짜기에서 홀로 행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으니. 어쨌든'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가 아니라 '나 때로 슬퍼도 힘들어도 여전히 행복하네.'가 성립된 것. 귀농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이 보기엔 굴곡이 많고 어려운 상황이 오기도 했지만 가는 방향이 맞다 생각했기에 즐거웠다.

 

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않았지만 이런 방향으로 이끄는데 일조한 문학작품이나 영화, 노래등을 읊어 볼까... 영화로는 「안토니아스 라인」, 「뷰티풀 그린」 노래로는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내가 찾는 아이」

시로는 「감각」, 백석의 시들, 「향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우리에게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라면」, 「산유화」 소설로는 「인간에 대한 예의」,,「바보이반」 「어느 과민성 사내의 몽상」, 비소설로는 「노자」, 「장자」, 「마하무드라의 노래」 ,「월든」, 「월든2」.

귀농을 결심한 후 읽었던, 결심이 옳았다는 걸 증거해 준 무수한 책들은(예를 들면 「오래된 미래」, 「아름다운 삶...」 등) 예외로 하겠다.

 

자잘한 이유들로는 우선 도시의 인구과밀로 인한 문제와 농촌에 사람이 없어 생기는 문제를 나 하나만큼의 자리만큼 해결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당시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기도 했다. 도시의 소음도 늘 나를 지치게 했고 낯선 이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도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시골도 조용하진 않다 . 새소리, 개구리 소리, 풀벌레 소리에 가끔 고라니도 꽤꽥거린다. 하지만 자연의 소리는 음악보다 훌륭하게 마음을 즐겁게 또는 편안하게 해 준다. 내 살아 가는 것이 지구에 덜 부담이 되길 바란다. 아직은 문명의 이기로 박힌 인이 덜 빠져 여전히 지구를 괴롭히며 공업을 쌓고 있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근사하기에 즐겁고 힘이 난다.

 

그리고... 자연 속에 있으면 가끔 속상한 일이 있거나 슬프거나 뻘짓하여 창피스러워도 금방 '그까이꺼'하고 정리가 된다. 새들이 벌레가 나무, 풀들이 정적이... 괜찮다고 토닥여 준다. 내 손을 이끌어 무궁무진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여기 더 재미난 게 있다고... 자연 속에만 콕 박혀 살아도 전혀 심심할 것 같지 않다.

 

귀농결심을 하지 않았을 때 가끔 아버지가 목표가 뭐냐고 물으시면 딱히 할 말이 없어 꼭 목표가 있어야 하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이버지는 단호하게 '사람이 목표가 있어야지!' 하셨다. 그 때는 그냥 살짝 웃고 말았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내가 '목표' 때문에 즐겁고 힘이 나는 사람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