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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들녘에서 들리는 늦털매미 소리가 유난히 능청스럽게 들린다. 늦털매미 울어대는 나무 아래에는, 잠시 허리를 펴고 시름을 잊으라는 듯, 온 갖가지 들국화가 꽃피고 있다.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국화과 무리를 묶어서 들국화라 하는데,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개미취, 벌개미취, 참취 따위가 있다. 도깨비바늘, 가막사리, 진득찰 같이 씨앗이 몸에 달라붙어서 아이들과 친근한 풀도 국화과 무리지만 꽃이 볼품 없어 들국화라 부르지 않는다.

국화과 무리는 대개 해가 짧아지는 가을에 꽃피는 단일식물이기 때문에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라 할 만하다. 들국화 가운데 벌개미취는 도시 화단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고, 구절초도 꽃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도시를 벗어난 길가 어디서든 눈에 띄는 쑥부쟁이는 그래서 더 들국화답다.


 

쑥부쟁이에는, 열 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쑥을 뜯어야 했던 가난한 대장장이 딸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쑥을 뜯는 불쟁이(대장장이) 딸이라서 '쑥부쟁이'라 불렸다는 처녀는 결국 동생들에게 먹일 나물을 뜯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을 보고 사람들은 '쑥부쟁이'라 불렀단다. 수수하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 우러나오는 연보라색 쑥부쟁이 꽃을 보면 정말 동생들을 위해 돈벌러 도시로 간 60,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국화과 무리의 꽃 한 송이는 실제로 여러 송이 꽃이 뭉쳐서 난 꽃다발이다. 쑥부쟁이의 연보라색 꽃 한 장 한 장이 다 꽃 한 송이이고 안쪽의 노란 술도 낱낱이 다 한 송이 꽃들이다. 보잘것없는 꽃송이들이 뭉쳐서 멋진 꽃다발을 이루고 벌과 나비를 모으는 것이다.


 

올 추석 성묘 길에는 쑥부쟁이 꽃 피던 그 자리에 '미국쑥부쟁이'가 무성했다. 미국 쑥부쟁이는 꽃꽂이용으로 북아메리카에서 들여온 것이 퍼져나가 자라기 시작한 귀화식물이다. 1979년 춘천 중도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 벌써 서울과 경기 북부, 경춘가도를 다 점령해 버렸다. 쑥부쟁이이건 미국쑥부쟁이이건 다 같은 꽃들이지만 마음 한 쪽이 씁쓸한 것은, 요즘 WTO로 벼랑에 몰리는 가난한 나라 민중들의 모습이 미국쑥부쟁이에 밀려나는 쑥부쟁이와 겹쳐져서 보이기 때문일 게다.

쑥부쟁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약재나 나물로 써왔다. 심장질환에 약효가 있고 위장을 좋게 해서 소화가 잘 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