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직전엔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두렵기도 했던 「인간극장」 촬영을 그제 마치고... 어제는 많이 잤고 오늘은 한가하다. 봄비는 시내 갔고 왕자님은 강대골 입구 안어르신이 부탁하셨던 일을 하러 갔다.

 

두려워했던 것에 비하면 촬영 자체는 조금 시시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조금 신경쓰이기도 하고 제대로 말을 못해 아쉽기도 하였다. 뭐 말이 그리 중요할까 싶긴 하지만.

 

촬영 기간에 남편과 많이 다투었다. 그냥 시끄럽기 싫어 묻어두고 포기했던 문제들이 지켜보는 자들이 있으니 수면 위로 떠오른 건가. 한사람에겐 오해를 받아도 좋으나 온 세상에까지 왜곡된 이미지로 비춰지기 싫었던 마음도 있다.

그는 나에게 그동안 까칠했던 것에 대해 사과, 참회했다.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살았던 것 같다고. (그런데 이런 사과도 이전에 여러 번 받은 것도 같은데^^ 이번엔 왠지 더 진지했다.) 나에게 상처가 있는 만큼 그에게도 나로인한 상처가 있을 것이다.

 

부지런하고 외향적인 사람인 남편과 그 반대인 나, 서로 이해하지 못해 마음을 닫아두고 표면적으로 협력하며 잘도 살아왔다. 어려운 문제는 뒤로 미루고 쉬운 문제부터 풀어 가는 시험처럼.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 때도 반드시 온다. 이번처럼.

 

다 풀진 못했지만 어느정도 실마리는 찾은 듯 하다.

그동안 나의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구구절절 하소연하며 조언을 구해 본 적이 없다. 내 문제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한다 한들 그것을 다른 사람이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들어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타인이 내미는 조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꼬이게 만들진 않을까. 싶었다.

 

참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다. 질문자들 앞에 서는 것, 나의 대답이 온 세상에 알려진다는 사실 앞에 미뤄두었던 숙제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촬영을 하고 싶어하는 남편에 비해 나는 좀 소극적이었는데 '기간내내 세월호 뱃지를 달고 있으면 어떨까.' '녹색당에 대해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론 알릴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정치적인? 동기를 부여하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일상과 가족과의 관계, 내면을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쉬운 것은 가족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하지만 나름 채식을 지향하고 있는데 어쩌다보니 기간동안 고기를 더 많이 먹게 되어 당황스럽고 속상했다. 물론 나의 내공이나 평소의 실천이 부족해서겠지만.

 

이제 방영되어 나오면 권감독님 말씀처럼 타인의 삶을 보듯 나의 삶을 구경할 수 있으리라. 태도, 말투, 시선 등으로 나라는 인간을 들여다 볼 수 있다니... 기대된다.

 

평소보다 더 싸우긴 했지만 촬영기간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다. 감자놓고 석한씨집에 다녀오고 씨앗 넣고 콩나물 길러 먹고 막걸리 담고 봄비 머루 다락방 만들고 야외부엌 만들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접이식 창문 만들어 달고 간장도 달이고 물고기 이사시키고 블루베리 심고 어머니댁에 가서 저녁식사 차리고 송성일샘 집에 가고 노인대학, 공부방 가고, 어머니랑 봄비랑 「귀향」보고 세월호 추모제 가서 링커파티하우스에서 잠도 자고 진달래화전 파티 하고 가계부 토론도 하고 소빈이네 여름이네 초대해서 두부 하고 빵도 굽고. 오랫만에 배드민턴 치고 마지막날 달밤이 데리고 비실비실 산책도 하고. 이십일 동안 엄청 많은 걸 했다. 평소에 하던 일에 여러가지 일이 한꺼번에 섞여들어 바쁘기도 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촬영을 피해 언니집으로 가신 것이 조금 아쉽고 죄송하기도 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좋았다.

 

늘 긴장감이 흐르던 설겆이내기 가위바위보도 재미있었고 (두사람 빠지니 당첨율이 쑤욱~ 올라갔다 ㅠㅠ) 임피디님 권감독님의 아재개그도 그립다. 그 자체가 인간극장이었던 이십일... 임피디님은 아이디어가 넘치는 열린 마음으로 우리 생활에 자잘한 즐거움을 더해 주었고 권감독님은 그동안 다큐멘터리 찍으신 경험담에 파룬궁이란 심신수련방법도 소개해 주고 귀한 음악 선물까지...

강대골이 더 풍요로와졌다.

 

산수유, 매화, 진달래, 산벚꽃, 조팝꽃, 배꽃이 이어지고, 여러가지 농도의 초록빛에 산새들 지저귐으로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 강대골의 봄날에 섞여든 두 사람, 전혀 어색하지 않아 한 식구 같았던 두 사람을 즐겁게 추억한다.

 

오랫만에 한가하게 나물을 장만했다. 음나무잎, 머위, 부추, 돌나물, 참나물, 황매화나물하고 쑥도 좀 뜯었다. 귀농했다 다시 도시의 아파트로 가 텃밭이 아쉽다는 권감독님의 어머니께 보내 드리려 했는데 마음만 받는다니 아쉽지만 우리가 먹어야겠다.